'스타크래프트 2'가 발매하기 전 부터 저는 계속 기다렸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한 뒤 부터 발매한다는 소리를 듣고서 기다렸고,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2010년, 고등학교 때가 되고 나서야 드디어 '스타크래프트 2 : 자유의 날개'가 발매됬습니다.
하지만, 용돈도 없는 고등학생이 '스타크래프트 2'를 구매할 방도는 없었습니다. 매달 조금씩 조금씩 한 달치를 구매하면서 오래된 컴퓨터로 빌빌 대면서 게임을 했습니다. 처음 '자유의 날개'는 정말로 '스타크래프트'의 후속작 느낌이 강했습니다. 물론 초반 베타 때는 밸런스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결국은 비슷한 빌드와 비슷한 능력치, 다시 말하면 큰 틀은 '스타크래프트' 그대로 였습니다.
제가 알던 그 '재미있던' 게임이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 2>
1. 첫 인상
솔직히 말하면, '브루드 워' 시절의 저는 흔히들 말하는 '라이트 유저'였습니다.
래더는 일절 하지 않고 가끔 친구들과 피시방에서 몇 판 하거나, 그 시간에 맵을 만들거나 유즈맵을 하곤 했지 되게 게임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스타크래프트 2' 발매 후, 저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자유의 날개 초기 5병영 사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경기>
솔직히 말하면 저는 무슨 빌드를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사신 올인만 사용했습니다.
다른 섬세한 정도를 몰라도 쉽게 게임을 접하고 이기고 지면서 게임을 배워나가는, 블리자드의 모토인 'Easy to learn, Hard to master'라는 말을 그대로 관통하는 게임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스타크래프트 2'를 처음 접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저는 '갤럭시 에디터'에 손을 갔다 대고 있었습니다.
<Neo Free Yourself>
첫 맵은 기존에 제가 만들었던 '브루드 워' 맵을 '스타크래프트 2'로 변환시키는 일이었습니다. 마치 처음 맵을 만들었을 때 처럼 저는 에디터 기능 하나하나를 눌러가며 맵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퀄리티가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 밸런스 적으로도 완벽하지 못했지만, 처음으로 '스타크래프트 2' 맵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저는 뿌듯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다시 맵 제작이라는 분야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Biohazard>
그 다음 맵은 'Biohazard'였습니다. 거의 초창기 멤버들이 '스타크래프트 2' 지도 제작에 손을 대고 있을 때, 저는 아프리카tv에서 인기를 끌고 있던 '기사도 연승전'에서 이 맵을 사용하게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곧 개최되는 'GSL' 오픈리그에서 운영 지향적인 지도를 원한다는 말이 나왔고, 그래서 맵을 찾고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당시에 '스타크래프트 2' 계정이 없던 저는 맵 파일을 'PlayXP'에 같이 올렸었는데, 다행히도 어떤 분께서 제 맵을 대신 '배틀넷'에 게시해 주셔서 '기사도 연승전'에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소식을 들은 저는 바로 PC방으로 뛰어가서 제 계정으로 맵을 게시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 맵 말고도 '탈다림 제단', '아이어 정원', '크레바스'라는 맵들이 후보에 올랐고, '기사도 연승전'에서는 이 맵을 계속 테스트 하고 있었습니다. 안타깝지만, 제 맵은 1차에서 걸러졌고 'GSL' 오픈리그는 '탈다림 제단'과 '크레바스'가 사용됩니다.
저는 다음 기회를 기다리고 기다렸고, 그렇게 다음 기회가 오기까지는 6년이 더 지나가게 됩니다.
2. 새로운 시작
<스타크래프트 2 맵 에디터>
처음 '스타크래프트 2' 맵을 제작할 때는 저는 여전히 'OMIT' 팀 소속이었습니다. 하지만, '브루드 워' 리그가 종료되고, '스타크래프트 2' 발매 후 '브루드 워' 맵 커뮤니티는 신기할 정도로 빨리 식어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게임 타이틀을 꼭 구매해야 하는 방식과 익숙해지기 힘든 높은 접근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야 할 게 너무 많아진 '갤럭시 에디터'는 12년 전의 '캠페인 에디터'와는 너무 다른 에디터가 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손을 댔다가도 금세 다시 손을 떼고 말았습니다.
그 타격은 네이버 맵 커뮤니티에도 이어졌고, 소수만이 남아서 '스타크래프트 2' 맵 제작으로 방향을 돌리거나 여전히 '브루드 워' 맵을 제작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맵 커뮤니티가 와해되는 이유는 또 한가지 더 있었습니다. 바로 SNS가 나타나면서 시작된 문제였습니다. 기존의 맵 제작자들이 모이는 곳은 '웹 페이지'였지만, SNS가 나타나면서 사람들은 '웹 페이지'보다 '카카오톡'을 이용해 지인끼리 바로바로 사진을 보여주고 대화를 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에 SNS가 '웹 페이지'들에 끼칠 영향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저 역시도 그냥 대화의 새로운 방면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맵 커뮤니티가 와해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고 깨달았습니다.
어찌됬건, 저는 흩어진 맵 커뮤니티와 맵 제작자들을 한 곳으로 모으기 위해서 '스타크래프트 2 맵 제작 팀'을 꾸려보기로 합니다.
<Team Galaxy 로고>
기존 'OMIT'에 있던 지인들과 팀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 토의하던 중, '갤럭시 에디터'의 갤럭시를 따온 팀 이름으로 정했습니다.
'Lunatic Sounds'님과 'Jacky'님, 이 두 명 역시 '스타크래프트 2' 맵 제작을 하고 있었고, 저는 팀에서 활동할 의향이 있냐고 물어봤지만 각자에게 전부 거절의 뜻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스타크래프트 2' 맵 제작을 하면서 새로이 알게 된 '여명'의 제작자 'Winpark'님을 만나게 됬습니다. 저는 'Winpark'님께 '이번에 제가 새로 맵 팀을 꾸리게 되었는데 혹시 같이 활동하실 의향이 있으시냐'고 물었고, 'Winpark'님은 흔쾌히 제 요청을 받아들이고 'Team Galaxy'로서의 첫 발자국을 내 딛었습니다.
그리고 'MetaGalaxy', 제가 아끼는 이 동생도 저의 이 새로운 도전에 함께 동참하기로 하며 'Team Galaxy'는 돛을 단 배처럼 순항할 준비가 끝난 것 처럼 보였습니다.
3. 위기
<당시에 제작했던 스타크래프트 2 맵들>
물론 시작은 순조로웠고, 팀원도 금세 10여 명 정도로 늘었습니다.
저는 '신전부수기 : 프로게이'의 '젤나가 사원'의 지형 제작도 맡으면서 유즈맵 쪽 까지 발을 넓히고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로 받았던 탓인지 개성 강한 팀원들은 당시 '스타크래프트 2'의 유일한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는 'PlayXP'에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저는 팀장의 입장으로서 여러 팀원들을 조율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곧 'MetaGalaxy'는 학업 문제 때문에 부팀장 직을 내려놓고 'Team Galaxy'의 항해에 삐걱임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 'Lunatic Sounds'님과 'Jacky'님은 'Team Crux'의 창단을 알렸고 'Winpark'님은 제게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Team Crux'로의 이적 사실을 언급하셨습니다.
마치 왼 팔과 오른 팔 모두 잃어버린 느낌이 든 저는 팀 활동에 의욕이 떨어지게 되고, 수시로 터지는 팀원들의 문제는 팀 운영에 손을 놓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팀장직을 스스로 내려놓으면서, 2012년 2월 16일. 'Team Galaxy'의 활동은 끊어지게 됩니다.
<Team Crux 로고>
그 이후, 개인적인 의사와 팀의 의도가 맞아 떨어져 저는 'Team Crux'에 입단하게 됩니다.
곧 군단의 심장이 발매되는 시기였고, '브루드 워'를 함께하던 친구들과 동생들도 가입한 이 팀에서 저는 다시 재기 할 기회를 보고 있었습니다.
<군 입대 2주 전에 올린 'Sky Bridge'>
하지만, 2013년 저는 군 입대를 합니다.
4. 재기
시간은 저도 모르게 흘렀고, 공군에서의 2년이 지났습니다.
'군단의 심장'은 저에게는 없는 확장팩이 되었고, 5달 후면 '공허의 유산'이 발매되기로 예정됬습니다.
물론 간간히 맵 제작을 하고 있었지만, 약간 억지로 만드는 맵이 되어있었고 지금 봐도 부족함이 너무 많은 맵들이었습니다.
<그나마 그 시간 중에 건질만한 맵, Light Breeze>
그리고 복학을 위한 의미 없는 6개월의 시간 사이에, '공허의 유산'이 발매됬습니다.
<수 많은 게이머들이 환호성을 지른 장면>
새로운 게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알던 게임이 아니었습니다. '자유의 날개'와 '공허의 유산' 사이에는 길게 보면 6년간의 시간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공허의 유산'을 처음부터 끝까지 즐기기 위해 프롤로그 미션도 하지 않고 '공허의 유산' 발매일만을 기다렸고, 마침내 발매된 그 날 이후 밤에 일을 하고 새벽에 집에 들어오면 '공허의 유산' 캠페인을 하기에 바빴고, 마치 처음 '자유의 날개'를 처음 접했던 그 때 처럼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2개월 가까이 만들지 않던 맵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라크쉬르'를 끝내고 며칠 지나서로 기억합니다.
뭔가 구도에 대한 아이디어가 번뜩였습니다.
본진부터 센터까지 곧게 감싸는 언덕으로 이루어진 맵, 아이디어가 번뜩이고 저는 일을 마치고 바로 집에서 맵을 긋기 시작했습니다. 맵의 기초적인 구도를 짜놓고는 무슨 컨셉을 넣을까 고민하다가 며칠 전에 플레이했던 '라크쉬르'에 대한 컨셉이 생각났습니다. 본진과 본진 사이에 '라크쉬르'의 불구덩이를 넣는다. 물론 센터는 밸런스적 요소를 생각해 바위로 막았습니다.
당시의 테란의 약세를 생각해서 제 2멀티를 가져가기 어렵게 파괴 가능한 바위로 그 사이를 막았습니다.
<라크쉬르의 제작과정>
불구덩이와 불구덩이 사이에는 서로를 잇는 길을 그렸습니다. 완벽해졌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GSL'에서 시즌 1을 위한 맵을 공모하고 있다고 공지가 올라왔습니다. 저는 이 맵을 보내기로 마음먹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며칠이 지나자, 제 맵인 '라크쉬르'가 공모에서 당선되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정말 단 시간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영감으로 그렸던 맵이 공식맵이 되다니...
5. 마치며
그리고 '2016 GSL Season 1'은 프로토스인 주성욱 선수의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제 맵이 2시즌 연속으로 쓰이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6년 아니 15년의 기다림을 대답해준 제 맵에 대한 감사한 마음일 뿐입니다.
솔직히 저는 전태양 선수가 우승하기를 바랬습니다. 프로토스의 전장인 '라크쉬르'에서 프로토스를 꺾고 10년 만의 우승. 그 모습이 제 맵 제작 경력과 비춰져 보였다는게 아니라고는 할 수 없을 겁니다.
누군가 제가 맵을 만든다고 할 때, 되게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단지 시큰둥한 반응 뿐. 하지만 제가 15년 동안 이 게임의 맵을 만든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이 게임을 하는게 좋았고, 누군가 제 맵을 같이 플레이하는게 좋았고, 제게는 이 게임을 최대로 즐기는 방법은 맵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좋아서 시작했던 일이 모두가 보는 맵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플레이하는 맵이 되었습니다.
시간은 흘렀지만, 맵 에디터를 잡는 제 손은 15년 전의 그 초등학생의 손과 다른게 없습니다.
재밌어서,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제가 에디터를 잡은 이유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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